오늘은 BTS 공연날
내가 태어나 자라난 광화문에서 공연을 한단다.
마음은 나도 젊은 사람들처럼 광화문에 나가고 싶다.
26만명이나 모인다니 젊은 사람들에게 그 시간은 양보해야지. ㅋ
불행하게도 어제는 대전에서 화재사고도 나서
마음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슬퍼하기만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을 한다.
전쟁이 나고 슬픈 일이 있어도 또 평상의 삶을 살아야 한다.
비가 오면 소금장수인 아들 걱정,
해가 뜨면 우산장수인 아들 걱정인 옛 우화를 생각한다.
우리는 행복을 생각하기에도 인생이 너무 짧다.
월요일에 건강검진을 앞두고 있어
오늘은 고추가루가 들은 것을 비롯한 음식제한이 많다.
생선구이는 제한 음식에 없고 영양분도 있을 듯 하여
바다향 왕코다리집으로....
음식값이 많이 올랐다.
전에는 생선구이가 1인 11,000원이었는데
15,000원으로 오르고 돌솥밥이 별도(3,000원)이다.
김치나 다른 반찬을 먹을 수 없으니 더 비싸게 느껴진다.
전쟁의 여파가 벌써 물가에 반영되나 보다.
마트 들러 잔뜩 먹거리 쇼핑을 하고 돌아오는데
중학교 담임샘이셨던 임샘께 받은 긴 메세지.
90이 넘어가시면서 이제 세상과 어떻게 하면
멋진 이별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메세지이셨다.
쇼그렌 증후군이라는 병을 앓고 계시는데
미국에 사는 딸이 보내주는 약을 먹으면서 지내신단다.
그 마음이 전달되면서 갑자기 다운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 몸을 움직여 음식을 만들어 드시고
동네를 걸어다닐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지.
페북에 수다를 떨고 있는 것도 너무나 열심히 읽고 계신단다. ㅋ
이대부속 중학교 시절 담임이셨던 임선생님.
내게 자신감을 주셨던 분이셨다.
내가 다니기 전의 이대부중은 좀 신경쓰는 집에서 보내는 학교였다.
그런데 이대부중이 추첨으로 바뀌면서
내가 다니던 수송국민학교에서 몇 명 안되는 아이들이 배정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광화문에서 이대까지는
4정거장 정도로 아주 먼것은 아니나 그 당시 내게는 너무 먼거리였다.
차멀미를 해서 버스를 타고 가다 중간에 내리기도 하여
학교를 통학하는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이었다.
거기다 동창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하는 것들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많은 아이들이 피아노를 칠 줄 알았었고
그 당시에 유행하던 마이마이 카세트들이 있어
팝송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고 좋아하는 가수들이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팝송을 들을 기회도 없었고 제목조차 몰랐다.
음악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살았다.
중학교 입학할 때 A, B, C도 모르고 들어갔으니
성적이 처음에는 좋은 점수를 얻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성적은 공부에 취미를 느끼기 시작하니 따라 잡을 수 있었다.
25등에서 15등, 10등, 5등으로 점점 상승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나는 이대입구에서 내려 이대를 지나 이대부중으로 가는 길 내내
영어 이야기를 외워서 발표를 준비하기도 했고
연극으로 발표하는 국어시간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나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었다.
넌 어쩌면 이런 노래도 모르냐며 말이 안 통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당시 아버지는 사업을 하신다고 여러번 망하신 상태였고
엄마는 아버지 대신 경제적인 역할을 하시기 위해 밤에 집에 들어오셨다.
특별히 내 공부를 도와주거나 뒤바라지를 해줄 형편은 아니었다.
나는 종이에 피아노 건반을 그려서 연습도 해가지고 갔으나
피아노 치는 시험 시간에 그 건반이 다르게 느껴져서 잘 할 수 없었다.
입고 다니는 옷도 교복이 아닌 자유복이었는데 옷도 잘 입지 못했다.
나는 별로 매력적인 아이가 아니었다.
그냥 조용히 교실 구석에 앉아 책이나 읽는 눈에 안 띄는 아이가 되었다.
그런 내게 임샘은 수학을 너무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방정식 문제 및 여러가지 수학문제풀이를 숙제로 내주셨을 때
밤새 열심히 풀어가면 만점을 맞았다고 대단하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다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중학교로 선생님을 뵈러 갔을 때 못 알아보셔서 서운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내게 자신감을 주셨던 담임샘이시라 너무나 감사한 마음.
교사하면서 못하는 아이들에게 더 눈이 가게 해주셨다.
교사로 아이들 이름을 외우고 불러주는 것
칭찬을 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정교사 40년 그리고 퇴직후 2년간 나는 또 교사로 살아왔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지금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하고 즐기면서 살아야지.
나무에 봄이 오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SWIM”을 크게 틀어놓고 듣고 있다.
밀려오는 파도를 자신만의 속도로 담담하게 넘어가겠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마음을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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