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방

손선배님과의 봄날걷기 모임참가

임성숙 2019. 3. 30. 23:21


지난번에 손선배님이 주관하시는 봄날 걷기 모임에 참여한 후에 2차 모임을 알리는 카톡이 왔었다.

다음주가 과학의 날 행사에 이어 공모연수 계획서도 써야 하는 등 일이 많은데다 날씨가 좋지 않다는 예보에 이번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답을 보냈었다.

그런데 아침이 되었을 때 비도 오지 않고 영재추천서도 어느 정도 완성이 되어 나들이 갈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늦게 출발하였다.

지난번에 뵈었던 김윤문, 이명호 선배님, 이상훈씨를 비롯하여 새로 최석태, 강석웅, 안영훈, 양선자씨를 포함한 10명의 인원이 부암동 일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비오던 날씨가 개어서 맑은 하늘 아래서 좋은 분들과의 나들이가 행복했다.


< 손선배님께서 요약해주신 나들이 이야기>

꽃샘추위가 살짝 찾아온 날 부암동 일대를 걸었습니다.

자하문 고개 위에 한옥으로 지어진 청운문학도서관은 시ㆍ소설ㆍ수필 위주의 다양한 문학도서를 소장한 곳입니다.

요즈음 공공도서관들이 그렇듯이 독서ㆍ문화예술교육과 관련된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민들에게 제공합니다.

독서모임 장소를 제공하기도 하고 국내 문학작품과 작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기획전시도 합니다.

인문학 강연이나 시 창작교실도 수시로 열립니다.

청운문학도서관 옆에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있습니다.

가까운 서촌에 윤동주 시인이 하숙을 하고 있었기에 윤동주 시인이 이곳을 자주 거닐었을 거라고 붙인 이름입니다.

언덕을 지나면 윤동주 문학관이 있습니다.

2012년에 문을 열었는데 원래 이곳은 청운수도가압장 건물이었습니다.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이렇게 멋진 공간으로 만든 곳이죠.

윤동주 문학관에서 길을 건너면 고 최규식 경무관 동상과 정종수 경사의 순직비가 서 있습니다.

1968년 1월21일 일어난 김신조 사태 당시 순직한 경관을 기리기 위한 동상입니다.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는 진관사를 넘어 북한산을 타고 넘어온 무장간첩들을 청와대 입구에서 막아서다 총격전으로 순직한 것입니다.

최규식 동상에서 창의문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북소문(北小門)인 창의문이 서 있습니다.

1396년(태조 5)에 서울 성곽 쌓을 때 세운 사소문(四小門)의 하나인데 자하문(紫霞門)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세검정 있는 동네가 ‘자문밖’이라 불렸는데 ‘자하문 밖’이 ‘자문밖’으로 바뀐 것이죠. 정면 4칸 측면 2칸의 우진각 기와지붕을 하고 있는 창의문은 사소문 중 유일하게 완전히 남아 있는 문입니다. 양주 등 한양의 서북지역으로 나가는 길이었는데 1416년(태종 16) 풍수지리상 이곳의 통행이 왕조에 불리하다 하여 폐문하고 일반인의 통행을 금지시켰다가 1506년(중종 1)에 풀렸습니다.
또 창의문은 1623년 인조반정 때 인조(당시는 능양군)와 반정세력이 이 문을 부수고 궁으로 들이닥쳤지요. 그래서 창의문 안에는 당시의 공신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문루(門樓)를 1740년(영조 16) 다시 세우면서 다락 안에 인조반정 공신들의 이름을 판에 새겨 걸었습니다.

창의문에서 가까운 곳에 환기미술관이 있습니다. 화가 수화 김환기를 기리는 미술관인데 설계는 건축가 우규승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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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시작한 광화문에는 오늘도 시위대의 물결이 걱정스런 마음이 들게 한다.

전에는 시위대라고 하면 정의를 위해 그런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마치 배출구같은 느낌이 든다.

약간은 냄새도 나고 약간은 삐에로 같기도 한 모습들...

도대체 왜 이 많은 인원들이 밖으로 나오게 되었을까?

새로 정부가 들어서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얼어붙는 경제에 또 터져나오는 여러 욕구들이 합해진 거 같다.

약간은 부끄러운 모습 같기도 하면서도 그래도 자기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도도 해본다.




나는 늦게 출발해서 통의 우체국 앞에서 만나 걷기에 합류하였다.

서촌으로 걷기 시작해서 윤동주문학관과 환기미술관으로 가는 것이 오늘의 코스..

어렸을 때부터 살았던 동네인데도 새롭다.


첫번째 만난 곳은 '이상'의 집

이상의 집은 이상이 실제 그의 집이라기는 할 수 없지만 짧은 인생을 살다 죽은 그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집이라고 한다.


이상은 본명 김해경.

1910년 8월 20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서 출생.

1937년 8월 20일 일본 동경에서 결핵으로 생을 달리함.



그의 나이 27에 요절한 천재 시인이요, 소설가, 건축기사.

짧은 생을 살았지만 건축가이자 문학가로 활동했고 지금도 강렬한 비평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문학작품을 남긴

훌륭한 작가이다. 그러나 그 삶은 그리 훌륭하지는 못했던 거 같다.

이상은 최초 종로에서 첫사랑인 금홍과 함께 제비란 다방을 운영하게 되는데.

술집 여급 출신인 금홍은 남자관계가 문란하여 둘 사이의 동거 생활은 평탄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금홍에게 심한 손찌검을 당하면서도 희열을 느낀 자학성의 일종인 성도착증 증세도

나타내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발표한 작품이 그 유명한 날개인데 금홍이가 다른 남자와 외박을 하는 날에도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훨훨 날고 싶다던 남자.

 

"나는 문득 날개가 돋아 현실세계를 박차고

단 한 번만이라도 날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라고 쓰고 있다.













서촌거리를 지나 윤동주 문학관으로 가는 길에 통인시장이 있다.

엽전과 엽전도시락을 구입해 원하는대로 간식거리를 사서 먹는다.





엽전10개에 5,000원. 값은 저렴하고 재미있다.









점심을 잔뜩 먹고 갔는데도 각종 간식거리가 유혹을 한다.

간식을 사서 주시는 바람에 또 폭풍 흡입...

손선배님 가방에서도 계속해서 먹거리가 나온다.

떡, 곶감, 과자.... 해설도 해주시고 먹거리도 제공하시고...











폭우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었던 예측이 무관하게 하늘이 너무나 맑고 깨끗하다.



가다가 인왕산 보이는 곳에서 한 컷 인증샷~~







그다음은 한옥의 고즈넉함과 인왕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는 청운문학도서관이 나온다.

이런 곳에 도서관이 있다니 정말 데이트하고 싶은 곳이다.

청운문학도서관에서는 시, 소설, 수필 위주의 다양한 문학도서를 만나 보실 수 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국내 문학작품과 작가를 주제로 한 기획전시와 인문학 강연, 시 창작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 시민이 누릴 수 있는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 윤동주 문학관을 보고 윤동주가 거닐었을 거 같은 산책로를 거니는 코스.  

시인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문과 재학시절, 종로구 누상동에 있는 김송의 집에서 문우 정병욱과 하숙생활을 했다.

당시 시인은 종종 이곳 인왕산에 올라 시정을 다듬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있던 청운수도 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하여 윤동주 문학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가압장이란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세상사에 지쳐 타협해가면서 비겁해지는 우리 영혼에 윤동주의 시는 아음다운 자극을 준다. 그리하여 영혼의 물길을 정비해 새롭게 흐르도록 만든 것이다. 윤동주문학관이란 우린 영혼의 가압장인 것이다.


전시실은 세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 제1전시실(시인채) : 시인의 유품을 통해 이야기를 담아 전시 (친필 원고, 생애 사진, 서명 등 영인본 총 133점)
- 제2전시실(열린 우물) : 물탱크의 윗부분을 개방하여 중정(中庭) 조성 (물의 흔적, 하늘과 바람과 별... 감상)
- 제3전시실(닫힌 우물) :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윤동주 시인의 일생과 시 세계를 담은 동영상 상영


마침 여행팀에게 설명하는 중이이서 형무소 같이 생긴 2전시실만 보고 돌아나왔다.
윤동주가 수감되었던 후쿠오카의 형무소를 재현한 감옥 같은 느낌도 들지만 그 까만 어둠 속에서 내려온 한 줄기 빛이, 시대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굳건히 한 청년 시인 윤동주를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우리는 전시실을 나와 윤동주의 산책길인 시인의 언덕길을 올랐다.












윤동주 문학관을 지나 환기 미술관으로...

환기미술관은 입장료가 비싼데 비해 그리 볼만하지는 않다는 의견으로 건물 구경만 하는 것으로...

이상의 세번째 부인인 김향안이 재혼한 김환기와 함께 세운 미술관이라는데 상업적 냄새가 많이 나서 호불호가 갈린단고 한다.

수화 김환기의 첫 번째 글자 '수'와 김향안의 두 번째 글자 '향'을 따서 수향 산방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재효라는 분의 작품이라는데 나무를 깎아서 만든 것이라 한다.

나는 미술은 잘 모르니...ㅋㅋ

마당 앞에 핀 꽃들이 너무 예쁘다. 흐드러지게 핀 전체 모습을 찍을 때와 가까이 볼 때와는 또 다른 모습도 본다.




다시 창의문으로 가는 길로...



가는길에 1968년에 일어난 김신조 사태 당시 순직한 경관을 기리기 위한 동상을 보았다.

사실 그런 사건들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아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 자체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라는 분이 진관사를 넘어 북한산을 타고 넘어온 무장간첩들을 청와대 입구에서 막아서다 총격전으로 순직한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 도보지는 창의문...

<네이버지식인>

1396년 조선 1대 왕 태조 이성계의 지시하에 축조된 관문이었으나 3대 왕 태종 당시 풍수지리 학자들이 왕조에게 불리함을 준다고 주장하면서 민간의 출입이 폐쇄되었다가 11대 왕 중종 때에 들어서 재개방되었다고 한다.
14대 왕 선조  임진왜란으로 문루가 소실되었고 15대 왕 광해군 말기 인조반정 때 반정군들이 통과하였던 관문으로 이를 통해 반정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21대 왕 영조 때 들어서 왜란 때 소실되었던 문루가 복원되었으며 산 속에 있었던 영향 때문에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때 수난을 어렵게 면하였고 1958년 보수공사를 받은 것을 제외하고 온전하게 본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1.21사태때에는 김신조 일당이 이 곳에서 총격전을 벌이기도 했으며 그때 공비의 총격에 순직한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과 정종수 경사의 순직비가 근처에 세워져있다.
한양의 남서쪽 출입문이었던 소의문이 원래 이름인 소의문 대신 이명인 서소문으로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과 비슷하게 창의문 역시 원래 이름인 창의문보다 자하문으로 훨씬 더 유명하다. 일단 창의문을 지나는 큰 도로의 이름부터가 자하문로이고 해당 도로가 지나는 터널 이름도 자하문터널이다. 창의문로는 경복고등학교 뒷편의 길인데 주요 도로가 아니다보니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른다. 참고로 나무위키에도 자하문로 항목은 있지만 창의문로 항목은 없다... 주변의 식당이나 빌라같은 곳들의 이름도 대부분 자하문 한정식 자하문 빌라 이런식으로, 창의문이라는 명칭은 상대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다. 인근의 상명대학교에도 자하관이라는 강의동이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학 교지의 이름도 자하(紫霞)이고, 축제의 이름도 자하제이다. 
사실 자하(紫霞)라는 명칭은 개성의 명승 자하동(紫霞洞)에서 따온 것이고, 이후 창의문 일대가 '자핫골'이라 불리면서 창의문도 자하문으로 불리게 되었다. 







걷기를 마친 후에는 인사동 마중에서 밥을 먹기로...

1020번 버스를 타고 인사동으로 내려오는데 여전히 시위대로 버스가 경복궁역까지만 간단다.

덕분에 경복궁을 가로질러 안국역 지나 인사동으로 들어가보는 재미가....







늘마중에서의 막걸리 한잔...

그리고 대화....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갔다.

저녁식사는 동갑내기라는 분인 안영훈씨가, 2차는 중간에 오신 강석웅선배님이 사주셨다.

하루종일 봄날을 느끼고 맛난 것까지 먹으면서 좋은 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감사한다.

다음에 5월 4일에 인천나들이를 하자는데... 헉~ 인천까지...

학교에서 집으로의 나날중에서 행동반경이 넓어지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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