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

엄마가 빛을 잃고 계실 때....

임성숙 2021. 3. 6. 18:30

엄마가 오랜 병고로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젊을 때 5명의 아이들(돌아가신 오빠와 유산된 아이까지 하면 7명)을 대학까지 가르치고 먹고 살기 위해 치열하게 사셨던 엄마. 

그러나 매일 바빴던 엄마는 내게 애뜻한 마음을 갖게 하지는 않았다.

아빠가 벌려놓은 사고(?)를 수습해야 했고 돈을 벌어야 했던 엄마.

지금 생각하면 같은 여자로서 안되기도 했지만

혼자서 도시락 싸가지고 학교를 가고 동생들 돌보던(?) 내게는 어린 시절이 그리 즐겁다고 생각지 못했다.

 

학벌도 재력도 없었던 아빠는 어울리지 않는 꿈이 많으셨다.

영화를 제작하셨고, 일확천금을 꿈꾸시고 사업도 하셨었다.

하는 일마다 사기도 많이 당하고, 하는 사업도 망하기 일쑤였다.

그런 아빠를 대신해 일을 수습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항상 엄마 몫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사업가 기질이 있었다.

좀 더 많이 배우셨다면 사회에서의 성공도 가지셨을 듯하다.

1년에도 집을 몇번씩 이사를 가고 차액을 남기다 보면 어느새 우리집은 잘 살기도 했다.

세종문화회관(이전에는 시민회관) 앞 건물이 우리 집 소유인 적도 있었다.

다섯 아이들을 공부가르쳐 다 나름의 역할을 살고 있게 되었다는 것은 엄마의 덕이기는 하다.

 

그러나

젊었을 적 빛나던 엄마는 지금은 갖가지 병으로 20년째 고생을 하면서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몸만 아픈 것이 아니라 피폐해진 정신은 온 식구를  힘들게 하곤 한다.

다행히 착한 동생들은 그런 엄마를 안쓰러워하고 그 비유를 맞춰드리려고 한다.

나는 어쩌다 가는(일주일에 한 번, 또는 이주일에 한 번) 엄마네 집 방문도 아주 부담스럽다. .

 

지난번에 했던- 아니 몇년 전부터 했던 -  이야기가 수없이 반복되고 과장되고 왜곡되어진다.

아침 일찍 가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5시간여의 시간(9시-오후2시)이 정말 힘들다.

이웃집 할머니, 요양보호사 아줌마 이야기들의 좋지 않은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대부분인데

한 10번 이상 들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한다.

동생이 사가지고 온 과일이며 반찬을 하나도 안 먹고 썩어서 나간다고 타박하셨다가

정작 사가지고 안오면 내가 돈을 안 주니 이제 반찬 사오는 것도 귀찮냐는 식으로 매도를 하신다.

원래부터 육류도 다른 집 음식도 먹지 못하시는 분인데 채소 종류 자체도 드시지를 못한다.

손목이며 다리를 보면  굵기가 내일이라도 돌아가실 분이라고 해도 이상치 않다.

그렇게 움직이기 어려운 몸으로도 본인이 청소를 하고-그것도 하루에 몇번씩- 음식도 남이 만든 것을 못 드신다. 적당히 요양보호사를 비롯한 우리에게 시키고 적당히 조금 덜 청소하고 살아도 되련만....

국을 하나 끓이려고 해도 몇 번씩 엄마에게 왔다갔다하면서 확인을 받아야 한다.

음식 솜씨가 나쁘지 않은 내가 음식을 해도 전혀 입을 대지 않으신다.

여든 몇해를 여태 그렇게 사셨는데 이제 와서 바꾸어지겠냐며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나는 엄마의 모습 속에서 미래의 나를 볼까봐 더 부정하고 싶은지도...

나이 들수록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되기도 한다.

 

오늘은 엄마가 뜬금없이 환갑날 선물을 못주었다고 돈과 선물을 주신다.

엄마 환갑은 내년 2월에 돌아와요. 올해는 60살이야. (만으로는 59살)

엄마는 아니라고 한다.

그래. 엄마, 고마워요.

엄마가 주신 것은 언젠가 엄마가 중국에 가서 샀다는 목걸이.

가짜 냄새가 나는데 모른 척 좋아해드린다.

엄마의 삐뚤삐뚤한 글씨의 축하가 써있는 봉투도 받는다.

 

점점 더 빛을 잃어가는 엄마.

그 자체를 받아들이자 한다. 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 머리가 아프고 힘들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그 빛을 환하게 해드리고 싶기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