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응급실을 거쳐 2주간의 중환자실,
그리고 여기 신화요양병원으로 올 때까지 이동하면서 돌아가신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엄마의 마지막을 같이 보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5개의 병실을 가족방으로 빌려 엄마를 모셔왔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엄마는 우리를 보자마자 눈물을 보이셨다.
엄마가 의식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반갑고 그 눈물이 우리 형제에게 다 전달되어 같이 울었다.
엄마의 임종을 준비하라고 했었기에 사실 오늘쯤에는 엄마와 이별의 순간을 맞이할 줄 알았다.
시험기간인 오늘까지 연가를 낸 상태에서 어느 정도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엄마는 요양병원으로 이동하신 후에 놀랄 정도로 회복이 되고 있으시다.
주사기로 도배되었던 손과 발이 두 배로 퉁퉁 불어 있었는데 거의 정상 모양으로 돌아오고
새까맣게 변했던 손톱은 제 색깔로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팔을 묶어놓았던 줄을 풀어놓으면서 팔목 힘도 커져서 손을 잡으면 꽉 잡으시면서 의사표시를 하셨다.
왼쪽 콩팥은 손상을 입었지만 20% 이상 살아 있는 오른쪽 콩팥 쪽과 연결된 소변줄에는 소변이 나오기 시작하여
500-900cc의 소변을 보시기 시작하였다.
승압제를 조금 쓰기는 하였지만 혈압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가래도 덜 나와 석션 횟수도 많이 줄었다. (제일 괴로워하시는 일이 석션이다. )
기도삽관을 한 상태이므로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고개를 끄덕끄덕, 도리도리의 형태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오늘 몇 일인지, 몇 시인지, 본인에게 치료가 어떤 것이 행해지고 있는지 다 알아듣고 계시다.
손자의 웨딩 사진을 보여드리니 눈물까지 그렁 거리실 정도로 인지 능력이 그대로이시다.
엄마의 놀라운 생명력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오늘까지만 연가를 낸 상태라서 내일은 학교로 출근을 해야 한다.
주말에 글램핑을 운영하는 남동생이 병원에서 밤에 간병을 했기에 좀 쉴 수 있도록 교대해주러 병원으로 향했다.
요양병원에는 출입이 어렵기 때문에(우리가 주 간병인 자격으로 출입) 식사문제가 어려워 김밥을 쌌다.
밥솥 한가득 해서 김밥 20줄을 쌌다.
살아있는 사람은 먹어야 하고 병실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태에서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입에 상처가 나서 그걸 낫게 하기 위한 Duo derm(듀얼덤)도 사가지고 병원을 갔다.
간병인과 간호사, 그리고 동생에게 김밥을 주었더니 힘든 가운데서도 맛나게 먹어주었다.
석션도 어제보다 훨씬 줄어들어 확실히 나이지시는 모습을 보였다.
엄마는 이러다 나아지실 수도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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