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맑은 선배가 있었다.
정도를 걷는 모범생이면서도 따스한 느낌으로 와닿던 선배.
태종대에서 보내주신 선배의 엽서가 생각이 난다.
엽서 안에는 맑은 파도의 거품이 보였고 맑은 하늘이 보였었다.
이 선배의 엽서를 받은 사람은 나만이 아니고 많은 동문들이 받았는데 글 하나하나가 맑은 물소리가 났었다.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 가끔 어떻게 변화하였을까 궁금한 분 중의 한 분이었는데
최근 책을 냈다고 책을 보내주셨다.
남성 옷 만드는 회사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현실적인 삶에서의 선배모습이 다르게 느껴지곤 했었는데
60세가 다 되어가는 나이에 시를 쓰기 시작하고 책을 출판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 땀을 보내주셨다. 나는 어떤 시를 쓰고 있을까?
삶의 가파른 언덕배기 스레트 지붕 아래
하루의 노동에 젖은 몸들이 모여들어
어둠을 밀어내고 꿈을 밝히던 곳
책 속 흐린 글자들
고향집 저녁 연기로 흩어지고
어머니의 마디마디 굵은 손
할머니 밭은 기침소리에
눈물로 돌아오는
우리들의 마지막 영토
비 오면 줄줄 새는 지붕
폭우에 쓸려 내려간 앞마당
이 누추한 학교를
온갖 그리움으로 껴안는다
모닥불 주위 어깨동무 돌던 여름수련회
물 속에 밀어 넣고 웃던 일
공을 차고 노래를 부르고
난로 꺼진 교실에서 언 발을 구르고
수업이 끝나 익숙한 어둠으로 돌아가던 길
정든 얼굴이 하나씩 세상 속으로 흘러가
빈자리 보며 돌아서 눈물 짓던 일
지울 수 없는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가슴에 쌓인 재를 들춘다
밤마다 별빛처럼 내리는 달콤한 졸음을 씻으며
단어 나부랭이 죽은 공식만 외운 것이 아니다
우리들 속에 잠들어 있는 힘
혼자 떼어서는 개똥 만도 못한
커다란 하나의 우리를 배웠다
우리를 가르친 것은 책이 아니라 목마름
우리를 키운 것은 밥이 아니라 땀
우리를 지켜온 것은 동정이 아니라
다같이 나눈 아픔과 눈물
마야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름
한 뼘의 가진 땅도 없는
우리 모두의 땅이여
('마야야학'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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