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선생님들 5명과 함께 융합교사연구회를 운영하기 위해 계획서를 제출하는데 제출시한을 4월17일로 알고 주말에 쓰기로 하였다.
그런데 공문을 다시 보니 4월 17일까지는 교육청에서 창의재단으로 보내는 마감시한이고, 교육청에 제출하는 마감시한은 4월 11일까지인 것이다. 에궁~ 내가 요즘 왜 이런가 하는 자책도...ㅋ
아직 다 쓰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써야 할 지 고민하느라 어제 밤에도 늦게 잠이 들었었는데....
오늘 손혁재 선배님이 주관하는 서울 진관사로 봄날 걷기가 있었는데 계획서 쓰려고 가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안 써도(?)된다는 생각이 드니 시간여유가 났다. 근처에 사는 남동생도 불러서 남편과 동네의 경희대로 벚꽃 구경을 가기로...
경희대 캠퍼스는 학생들보다 동네 주민들의 놀이터가 되어 사람들의 물결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하늘도 오랜만에 맑고 꽃들은 활짝 피어 봄이 완연하게 와닿았다.
인생은 모두 얻을 수도 없고, 모두 다 잃어버릴 수도 없다.
가지 못한 한 길은 언제나 있다. 반면 또 갈 수 있는 길은 또 있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현재에서 행복을 즐겨야 한다.
경희대로 가는 길에 우리 아파트도 온통 벚꽃 천지이다.
귀여운 막내동생 막내 아들...
오늘 진관사 여행은 가지 못했지만 손혁재 선배님이 보내주신 글과 사진을 통해 또 여행을 한다.
가는 곳마다 꽃이 흐드러진 봄날 북한산 진관사를 찾았습니다.
진관사는 천년도 전인 고려 현종(8대) 임금 때 지어진 절입니다.
현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진관조사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지은 것입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신라 진덕왕 때 원효 스님이 삼천사와 함께 지은 신혈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목종 임금(7대)은 아들이 없어 자신의 사촌동생이자 태조 왕건의 아들인 대량원군을 세자로 책봉합니다. 그러자 경종(5대)의 비로 파계승 김치양과의 사이에 사생아를 낳았던 천추태후가 세자를 죽이려 합니다. 세자를 신혈사로 강제출가 시킨 다음 독살하려 하고, 자객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런 대량원군을 진관스님이 지켜주었습니다. 대웅전의 본존불이 현종의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현종은 강조의 정변으로 목종이 죽고, 천추태후가 실각한 뒤에 임금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진관사는 조선시대에는 수륙재의 근본 도량으로 600년 넘게 수륙재를 지냈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된 진관사 수륙대재는 해마다 음력 9월에 거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삼성산 삼막사, 수락산 불암사, 보개산 심원사와 함께 한양근교 4대 사찰로 꼽혀 왔습니다.
지금의 진관사는 60년대 이후의 모습입니다. 6.25 때 나한전 등 3동만 남기고 모든 전각이 타버렸고, 비구니인 진관 스님이 1964년부터 재건하기 시작했습니다. 1968년 1.21사태 때는 김신조 일당이 자하문 쪽으로 침투할 때 이곳 진관사를 넘어갔다고 합니다.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인데 진관사는 당시 독립운동의 근거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일심교라는 비밀독립운동단체가 진관사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는데 보현보살의 실천행으로 행동해야 독립할 수 있다는 의미로 화엄경의 일심(一心)이라는 말을 조직의 이름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일심교를 이끈 초월스님은 독립자금 조성에 앞장서다가 1944년 6월 청주감옥소에서 66세의 나이로 순국하였습니다.
2009년 5월 칠성각 해체 작업 중 불단 밑에서 태극기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초월동조(初月東照) 스님의 태극기로 일려진 이 태극기는 현존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것인데 일본의 탄압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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